출산, 축복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감정들
“아기 낳고 얼마나 행복하겠어.”
“엄마가 되었다는 건 축복이잖아.”
수많은 축하 인사 속에서 나는 기쁨보다 막막함을 먼저 느꼈다. 아이가 태어난 순간 눈물이 났다. 감동 때문이었는지,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.
누구나 출산 이후에는 ‘감정의 변화가 있다’고 말한다. 하지만 그 변화는 단순한 기분의 기복이 아니었다.
내 안의 내가 사라지는 듯한 공허함, 설명할 수 없는 분노, 이유 없이 쏟아지는 눈물, 그리고 그 감정을 누를 수밖에 없는 현실.
나는 산후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생생하고도 무거운 것인 줄 몰랐다.
이 글은 그런 나의 솔직한 이야기이자,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기록이다.
내가 웃고 있다면, 그건 애써 괜찮은 척하는 중이야
출산 직후의 나는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, 내면은 온통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했다.
“엄마가 된 걸 축하해요.” 병원 복도를 지나며 들은 축하의 말들 속에서 나는 어색하게 웃었지만, 마음속에선 이상한 감정들이 일렁이고 있었다.
마치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느낌, 이제부터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두려움이 밀려왔다.
산후우울증은 단지 슬픈 감정만을 말하지 않는다.
가끔은 이유 없이 무기력하고, 가끔은 사소한 일에도 날카로워졌다.
잠도 부족하고, 내 몸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아프고 무거웠다.
하루 종일 아기를 안고 있어도, 어딘가 더 외롭고 허전했다.
특히 모두가 잠든 새벽, 조용한 집 안에서 혼자 우는 일이 잦아졌다.
그럴 때마다 ‘나만 왜 이럴까’, ‘내가 이상한 건가’ 하는 자책이 마음을 짓눌렀다.
무엇보다 힘들었던 건, 주변의 시선이었다.
“애 낳고 좀 예민해졌네.”
“누구나 다 그렇게 키우는 거야.”
이런 말들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고, 그저 꾹 참고 더 깊숙이 감정을 밀어 넣었다.
하지만 돌이켜보면, 내가 정말로 바랐던 건 누군가의 공감 한 마디였다.
“너무 힘들지? 괜찮아, 그런 감정이 드는 게 당연한 거야.”
그 말 하나만 있었어도, 나는 스스로를 덜 미워할 수 있었을 것이다.
‘엄마’라는 이름에 갇힌 나, 나는 어디로 갔을까
출산 후 가장 크게 느낀 건, ‘내가 나를 잃어가고 있다’는 감각이었다.
사람들은 이제 나를 ‘누구 엄마’라고 부르기 시작했고, 나 역시도 아이의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.
내 이름, 내 취향, 내가 좋아하던 것들은 점점 희미해졌다.
누구보다 소중한 아기를 품었지만, 그만큼 나 자신은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이 사라져갔다.
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도 힘들고,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도 사치였다.
하루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놀랐다.
눈 밑은 까맣고, 머리는 정리되지 않은 채 엉켜 있었다.
그런데도 가장 마음 아팠던 건, 그런 내 모습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현실이었다.
“애 키우는 엄마가 다 그렇지 뭐.”
이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덮여버렸다.
가끔은 너무 답답해서 아이가 자는 틈에 소리 없이 울기도 했다.
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감정이 쌓이고 쌓여, 마치 내 안에서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.
이럴 때마다 나는 되묻곤 했다.
‘나는 지금 행복한 걸까?’
‘내가 없어도 이 가족은 괜찮을까?’
‘엄마’라는 역할은 너무도 중요한 존재지만,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과 희생이 숨어 있다.
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들에 대해 너무 쉽게 침묵하도록 강요받는다.
하지만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.
엄마도 사람이다.
울 수 있고, 아플 수 있고, 지칠 수도 있다.
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, 그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었다.
나는 천천히, 아주 조금씩 다시 나를 찾아가는 중이야
산후우울증은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다가오지 않는 감정일 수 있지만, 누군가에게는 매일의 현실이다.
그리고 그 현실은 스스로 외면하지 않으면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.
나 역시 처음에는 모든 걸 혼자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.
하지만 결국 나는 ‘혼자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’는 걸 인정하면서부터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.
내가 먼저 한 건,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었다.
나는 힘들었고, 지쳤고, 무기력했다.
그리고 그것은 ‘내가 못나서’가 아니라, ‘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’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.
그 다음은 아주 작은 변화였다.
아이가 낮잠 잘 때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기, 거울을 보고 한 번이라도 웃어보기, 남편에게 내 감정을 조심스럽게 말해보기.
그 작은 실천이 나를 다시 나답게 만들어주었다.
가장 큰 도움은 전문 상담이었다.
내가 느끼는 불안과 슬픔은 단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호르몬 변화와 극심한 피로, 정체성 혼란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‘정신적인 상처’라는 걸 알게 되자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.
내가 약해서가 아니라, 너무 많은 걸 감당하고 있었던 거였다.
회복은 단기간에 되지 않았다.
몇 달이 걸렸고, 지금도 완벽하다고는 말 못 한다.
하지만 분명한 건, 나는 지금 나를 다시 찾아가는 중이라는 것.
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아이와 함께 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.
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오늘 하루를 견딜 이유가 충분하다.
'육아' 카테고리의 다른 글
| 의외의 효자템들 써보니 진가가 드러난 일상 아이템 추천 (6) | 2025.07.24 |
|---|---|
| 33개월 아기 발달사항 및 언어발달 (2) | 2023.09.06 |